하양이는 코스트코 케이지에서 제법 잘 적응하는듯 했다.
해먹에서 낮잠을 즐겼고 주변의 풍경을 감상했다.
실내화장실도 어느 정도 잘 적응해서 대소변만 잘 치워주기만 하면 불만이 없어 보였다.
물론 삭량은 기본. 지겨울까봐 가끔 새로운 음식이나 캔을 주었다.


한번은 케이지의 높은 단에서 뛰어내릴 때 어딘가에 오른쪽 뒷발톱이 걸려 찢어지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두 번 병원을 방문해서 치료를 받았고 일주일 가량 약을 먹으면서 상처는 아물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는 이제 거의 기력을 회복한듯 마당에서 점프를 하고 달리면서 사냥놀이를 즐겼다.
때로는 케이지 문을 열어 두어도 해먹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았다.
케이지 밖에 나오면 멀리가지 못하게 줄에 묶어 두었다.
긴줄이라 어느 정도 자유롭게 마당에서 놀 수 있었다.
사실 줄에 묶긴 싫지만 녀석이 또 산으로 동네로 돌아다니면 지난 번처럼 큰 사고를 당할 것 같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케이지와 줄로 키우다 보니 녀석은 항상 우리 근처에서 있고 원할 때마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전처럼 가끔 녀석이 어디선가 놀다가 갑자기 와서 거실 유리창에서 밥달라고 부를 때의 반가움은 더이상 경험할 수 없었다.
또 가끔 집안에 들어와 내 무릎에 올라 오거나 두 발을 올리는 다정함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케이지 사육 이후 오히려 녀석이 우리와 멀어진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우리는 날마다 케이지 청소로 지쳐만 갔다.

그러다 어제 녀석은 하루 종일 울었다.
화장실 청소를 해줘도 먹이를 줘도 바뀌지 않았다.
마당에서 장난감 쥐 사냥도 별로 즐거워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녀석이 여전히 아픈 것도 아니었다.
수술 부위는 거의 아물었고 뒷발의 붓기도 모두 빠져 거의 멀쩡해 보였다.
몸은 완전히 회복된 듯 보였다.
마당에서 쉬고 있던 나는 하양이의 알 수 없는 울음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그런데 유심히 들어보니 울음소리가 평소와 달랐다.
뭔가 몸 내부에서 공명이 울리는 그런 소리였다.

저녁 즈음 나는 아내에게 케이지를 열자고 했다.
녀석이 다시 야생으로 돌아가면 얼나나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의 상태는 우리든 하양이든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것이다.

케이지의 맨하단의 문을 열자 하양이는 기다렸다는 듯 울음을 멈추고 케이지 밖으로 나왔다.
아내는 잠시 녀석을 안고 눈물을 흘렸다
내 마음 속에도 무언가 서늘한 것이 묵직하게 흘러내렸다.
마침내 아내가 녀석을 놓았다.


하양이는 뒷마당 앞에서 잠시 서 있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뒷산으로 서서히 걸어갔다.
그러자 갑자기 뒷산에 노란색이 섞인 길냥이 한마리가 모습을 드러내고 하양이를 향해 묘한 소리를 냈다.


나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양이가 종일 알 수 없는 소리로 울어댄 것이 바로 이 냥이 때문이라는 것을.
둘은 계속해서 무어라 말하며 소통했다.
노란 고양이가 조금 아동하면 하양이도 따라가며 이동했다.
그렇게 하양이는 서서히 뒷산 속으로 이동하더니 마침내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순 없다.
중성화는 고양이를 소유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심일지 모른다.
나는 다만 녀석이 다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서 다시 나타나 먹을 걸 달라고 졸랐으면...
만남이 있으면 이별은 이미 예정된 것이지만 이별은 항상 슬픈 일이다.



'전원생활의 맛'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 2019 - 앵두나무  (0) 2019.05.12
봄 2019 - 살구나무  (0) 2019.05.12
길고양이 사육기  (0) 2019.05.06
길고양이 레버넌트2  (0) 2019.04.18
길고양이 레버넌트1  (0) 2019.04.1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