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집에 대한 나의 생각이 송두리채 전복되는 일이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일이라기 보다는 한동안 서서히 진행되던 것이 마침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2년 동안 살던 아파트의 전세비가 엄청 뛰어 더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물론 너무 오래된 아파트라 불편한 것이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미련도 없었다.
새 주거지를 찾다가 분당 정자동이 끌렸다.
맛집과 예쁜 카페 그리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동네였기 때문이다.
엠코 건물에 있는 한 부동산에 들어 갔다. 젊은 남자 중개인이 무척 친절했다.
그는 바로 정자동의 한 아파트로 우리를 안내했다.
새 아파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오래되서 낡은 아파트도 아니었다.
노부부만 사는 아파트였는데 비교적 깨끗하고 정리가 되어 있었다.
당시 우리가 살던 아파트에 비하면 훨씬 덜 낡았고 구조도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나에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느낌이 치솓아 올랐다.
바로 숨이 막힐 듯한 답답함이었다.
사실 당시 떠나야 하는 아파트는 낡긴 해도 복층 구조에 앞 뒤로 마당과 이어지는 독특한 1층 아파트였다.
그래서 아파트지만 약간의 단독주택의 느낌이 나는, 비교적 덜 답답한 집이었다.
그런데 정자동에서 본 아파트는 전형적인 고층의 아파트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낮은 층고와 거실에 붙은 방들이 나를 짓누르는 느낌을 주었다.
마치 영화 큐브에서 탈출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처럼 숨막히는 심정이 들었다.
나는 대충 보고 나온 후 정자동 아파트는 더이상 보지 않았다.
정자동 아파트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더이상 아파트와 같은 형태의 집에서 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약 60%는 아파트에서 산다고 한다.
나도 10년 전만 해도 별생각없이 아파트에 살고 싶었다.
그래서 재건축 대상 아파트에서 신축 아파트까지 다양하게 경험해 보았는데 지금 돌아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 아파트들은 모두 3층을 넘기지 않았고 앞뒤로 수목이 있고 개방감이 좋은 아파트였다.
나는 그동안 특별히 의식하진 못했는데 자연적이고 마당있는 집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난 어느 순간부터 단독주택을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정자동 부동산에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여기서 내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특정 형태의 집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요즘 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고 집에 대한 다양한 생각이 표출되고 있기 때문에 나도 그 다양성에 일조하려 한다.
아파트의 최대 장점은 편리성이다.
교통, 쇼핑, 관리 등등 면에서 단독주택보다 편리하다.
한마디로 도시노동자의 삶에 최적화되어 있다.
대신 아파트는 획일적이고 표준화된 삶을 부과한다.
사각형 박스의 구조는 각 개개인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가장 효율적인 형태의 공통적인 공간 구조를 제시할 뿐이다.
기상 후 씻고 먹고 싸고, 일과 후 귀가해서 또 먹고 TV 보고 다시 씻고 자는, 다람쥐 쳇바퀴같은 일상구조를 가진 도시직장인에게는 더 없이 편리한 집이 바로 아파트다.
하지만 자기 나름의 고유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아파트는 감옥과 같이 숨막히는 공간이다.
나는 그동안 왜 아파트 생활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왔을까?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이것이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약 10년 가까이 아파트에서 살아온 내가 찾은 답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이제 내가 답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누군가 획일적으로 만들어 놓은 집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것,
그것은 바로 내가 원하는 집을 직접 짓고 사는 것이다.
세상에는 내가 원하는 삶에 맞추어 지어진 집이 없다.
그런 집은 스스로 지을 수 밖에 없다.
이 일은 돈을 필요로 하지만 돈이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이것은 삶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의지의 문제다.
요즘 서울 아파트 시세를 보면 마음만 먹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스스로 집을 지을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사회 속에서 오랫동안 수동적으로 삶아온 사람들이 과연 갑자기 능동적으로 삶의 철학을 갖고 그것에 맞는 집을 짓는 것이 가능할까?
어떤 집에 살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일부분이자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나만의 고유한 삶을 위한 집을 원한다면 스스로 지을 수 밖에 없다.
물론 이 길은 매우 험난하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는 있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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