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 만에 돌아온 우리 냥이는 온통 상처 투성이였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복부가 찢어져 내장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녀석은 누워 신음하고 있었지만 눈빛이나 얼굴 표정만으로는 고통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이대로 놔 두었다가는 서서히 죽어갈 것이 명확해 보였다.
나는 바로 전에 지나가다 봐둔 동물병원에 전화했다.
직원에게 응급상황을 설명했고 잠시 후 수의사가 전화를 주었다.
그는 침착하고 친절하게 방법을 설명해 준 다음 비용을 알려주었다.
40만원.....
내 예측을 훨씬 넘은 수술비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우리 양이의 생명이 달린 일이다.
나는 가까운 동물병원부터 닥치는 대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절반 정도 저렴한 병원을 발견했다.

와이프는 녀석을 안고 뒷좌석에 탓다.
하지만 녀석은 놀라 도망치고 말았다.
지금까지 녀석을 키우던 상황과는 너무도 다른 상황에 처한 것이다.
나는 즉시 수소문 끝에 냥이 케이지를 살 수 있었다.
케이지에서 녀석은 의외로 온순했다.


마침내 병원에 도착했고 즉시 수술이 진행되었다.
다행이 수술은 잘 끝났다.
수의사에 따르면 복부 외에 앞다리에도 물린 자국과 찢어진 부위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복부에 네 바늘, 앞다리에 한 바늘 꿰매었다고 한다.


안도의 한숨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새벽에 열린 안방 문틈으로 날 부르며 내 잠을 깨우던,
큰 눈망울로 나를 보다가 내 손을 핥던,
귀가 하면 마당에서 온몸을 뒤집으며 반기던,
그 모습이 눈에 밟혀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리 양이는 죽음의 문턱에서 와이프 목소리를 듣고 다친 몸을 이끌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고양이 레버넌트~~~
내 느낌대로 부른 것이다.


이날 이후로 모든 것이 변했다.
나는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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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우리집 길냥이가 삼일 만에 돌아왔다.
목소리의 파장이 남다른 와이프가 앞산을 향해 쏘아올린 소리를 녀석이 들었나 보다.


사실 녀석은 길냥이도, 집냥이도 그 사이 어딘가에 속한다.
화장실은 뒷산이다.
뒷산을 탐색하다가 사방이 탓트인 곳에 흙을 파고 앉는다.
시원하게 볼일을 보고 나면 흙으로 오물을 덮는다.
녀석은 이렇게 볼을을 봐왔다.


비를 피하고 밤을 보낼 수 있도록 마당에 움막같은 집을 두 채나 지어줬다.
덕분에 녀석은 겨울을 무난히 날 수 있었다.
고양이 사료를 거의 날마다 주었고 캔도 자주 먹였다.
가끔 우리가 먹는 회, 구운 생선, 소나 돼지고기 등을 먹기도 했다.
잘 먹고 잘 싸고, 와부이긴 해도 따뜻한 집이 있어 녀석은 나름 행복해 보였다.
우리집 마당이 모두 녀석의 놀이터얐다.
뿐만 아니라 온산을 누비고 다녔다.
작년 겨울 날씨가 추워지면서 와이프가 낮에는 녀석을 집안에 들이기 시작했다.
처음 집안에 들어온 녀석, 생각보다 훨씬 온순하고 조용했다.
이때부터 와이프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녀석을 목욕시꼈다.
녀석은 와이프 방에서 서서히 거실로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집안이 서서히 녀석의 털로 덮히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다.
그래도 착하고 귀여워서 냥이와 우리는 나름 즐거운 동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질투의 신은 가끔 우리의 삶을 통채로 흔든다.
봄이 되어 갑자기 바빠진 우리는 녀석에게 소홀해졌다.
녀석은 온산을 누비며 잘 지내는 듯 보였다.
하루 이틀 외박하는 일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봄이 되니 내가 지어준 집에서 자지않아도 되나 싶었다.
그래도 배가 고프면 어김없이 우리집에 와서 포식을 했다.


지난 주 토요일, 녀석은 삼일째 외박 중이었다.
주말에 여유가 좀 생긴 와이프가 쩌렁쩌렁한 음파를 뽐내며 산을 향해 외쳤다.
“하 ~ 야 ~ 앙 ~ 아 ~ ~ ~ ~ ~ ~”
그 소리를 듣고 녀석이 삼일 만에 마당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가장 오랬동안 집을 비운 녀석의 모습은 거렁뱅이 자체였다.
온통 흙이 뭍었고 이상한 액체가 털에 응고되어 누렁이가 되어 있었다.
이참에 이름을 바꾸어야 할 지경이었다.

배가 많이 고팟던지 녀석은 걸신이 든 것처럼 폭풍같이 사료와 캔을 흡입했다.
물까지 한모금 마시고 나서야 우리가 눈에 보였는지 눈끼스를 날란다.
그러고는 마낭에 자리를 틀고 배를 드러내는데.......
여기저기 묻어 있는 피자국......


와이프는 그 피의 원인을 찾아 털을 뒤적이다 녀석의 복부가 3~4센티미터 찟어진 것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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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고 가장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나무는 앵두나무다.

집 공사 중에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뿌리채 뽑혀, 뒷마당에 포대로 싸여 내팽개쳐 있던 나무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바로 앵두나무였다. 

가지를 너무 많이 쳐서 모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했다. 

이식하지 않은 채 너무 오래 방치해서 살아날 수 있을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공사 막바지에 다실 앞에 작은 정원에 심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수도 공사 때문에 다시 파내야 했다. 

이왕 더 해가 잘 드는 곳으로 옮겨 심으려고 땅을 팠다.

생각보다 나무의 무게가 상당했다.

턱이 많은 마당을 가로질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심었다.

혼자서 맨손으로 나무 이식을 해보니 정말 쉽지 않았다.

무게도 장난이 아니고 굵은 가지가 많아 위험하기도 했다. 

옮겨 심을 자리에 뒷산에서 퍼온 비옥한 흙을 가득 넣었다. 

게다가 추가로 골절에 특효가 있다고 소문난 홍화씨를 다려먹고 남은 건더기를 가득 넣었다.

당시 나무에 대해 거의 무지한 전원생활 풋내기가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려는 발버둥이라고 할까.  

그리고 마침내 녀석을 해가 정말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안착시켰다. 

2018년 마침내 앵두나무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온 나무줄기를 감싸고 하얀 꽃들이 만개했다.

살구나무나 라일락에 비해 향기는 그리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꽃이 정말 풍성하게 피었다. 

부활한 앵두나무의 보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꽃이 지고 얼마 후 꽃이 핀 자리에 빨간 앵두가 열렸다.

자연스럽게 유기농 앵두를 재배한 것이다.

수없이 달린 앵두를 여러 날에 걸쳐 바구니에 가득 채웠다.

그리고 앵두잼을 직접 만들었다. 

결코 마켓에서 사먹을 수 없는,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유기농 수제 잼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사실 2019년 봄에도 가장 기다려지는 것이 바로 이 앵두 열매다.

이미 잼을 담을 병들을 깨끗하게 씻어서 준비해 두었다. 

 

 

집을 지으면서 조경사가 뒷마당에 있던 살구나무의 가지치기를 했다.

옮겨심기 좋게 가지를 매우 많이 쳤는데 그 여파 때문인지 2017년에는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다.

2018년에 와서야 제법 하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토지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

지하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팠고 철큰 콘크리트 공사를 마치고 다시 흙을 채웠다.

그때 외부에서 마사토를 가져와 채웠는데 나무들이 그리 잘 자리진 못하는 것 같다.  

앙상한 가지에 어느듯 살구나무의 싱그러운 꽃내음이 앞마당을 가득 채웠다.

살구나무의 꽃내음이 이렇게 좋은지 예전에는 몰랐다.

자연이 주는 즐거움을 모르고 산 것이다. 

하지만 2018년까지 아직 열매는 맺히지 않았다.

2019년에는 보다 화려한 살구나무 꽃의 향연이 기대된다. 

열매도 달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마당의 가운데에 자리잡은, 우리집의 상징같은 살무나무.

그 그늘 아래서 쉴 수 있는 날이 기대된다. 

 

 

인터넷 상에서 오류가 있어서 얼마 전에 올린 글과 그림이 몽땅 날라가 버렸다.......

아쉬움 때문에 사진만 다시 올리기로 한다.



갈수록 지독하지는 미세먼지 속에서 얼마나 살아야 하나.
오늘도 역대급 미세먼지로 나는 창문을 꼭꼭 닫고 집안에 갇혀 있다.

가끔 맑은 날에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 내 몸에 기억된 어릴쩍 싱그러운 그 공기가 다시 돌아와 내 온몸 구석구석을 흔들어 깨우는 기분이 든다.
그때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 지금은 꼭 지켜야할 귀중한 것이 되었다.
맑은 공기를 찾아 전원 속에 집을 지었지만 하늘을 온통 뒤덮은 뿌연 미세먼지 속에서는 의미없다.

부득이하게 마당에 잠깐 볼일이 있어 거실문을 연다.
그때 들리는 반가운 소리,
내가 한참 찾아 헤메이던 그 소리다.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딱....................
나름 박자가 잘 지킨다.


녀석이 돌아왔다.
딱따구리다,
녀석을 프랑스어로 피베르pivert라고 한다.
내 필명이다.
새 중에서도 독특한 매력을 가진 멋쟁이다.
빨간 두건을 쓰고 달타냥의 망토를 걸쳤다.
길고 곧은 부리로 나무를 쪼아 내는 소리는 제법 크지만 나무의 울림이라 귀에 거슬리지는 않는다.
그 매력으로 애니메이션의 주연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어릴적 TV에서 나의 히어로였다.
​​


난 여전히 녀석의 매력에 빠져있다.
필명을 pivert로 선택한 것은 심리적 동일시 때문일까?
나도 세상에 신선한 소리를 울리는 멋쟁이가 되고 싶었던 것일까?
ㅋㅋ
아무튼 딱따구리는 나에게 멋쟁이 스타다.
그래서 오매불망 녀석을 기다린다.
​​


이 동네에 이사와서 딱따구리을 본적은 있지만 손으로 꼽을 정도다.
전에 뒷마당 나무에 앉은 적이 있었다.
색이 특별히 화려한 녀석이었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다가가자 곧 날아가 버렸다.
매우 예민한 녀석이다.
작은 움직임, 소리에도 날아가 버린다.
​​​


그런 녀석이 우리집 앞 길 건너편 산에서 드럼을 치고 있다.
나는 순간 동작을 멈추고 녀석을 찾기 위해 온 감각을 동원한다.
찾았다.
나는 이럴 때를 대비해 DSLR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끼워서 꺼내 두었다.
나는 마당으로 조심스럽게 나가서 녀석을 마침내 찍는데 성공한다.
얏호 얏호~~
하지만 그림이 썩 좋진 않다.
내 실력도 미숙하지만 나뭇가지가 너무 많아서 녀석이 잘 보이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미세먼지.
세상이 온통 뿌옇다. ㅠㅠ​



사실 자본주의와 경쟁하는 이데올로기는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연을 중시하는 이데올로기였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인간의 오만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릴 적 그 냄새와 그 풍경이 그리운 것은 과연 단순히 과거의 향수 때문일까?

크리스마스 전 이케아를 다녀왔다.
우리집 냥이의 물건과 크리스마스 장신구를 사기 위해.
아니나 다를까 긴 이케아 전시장을 지나다 보면 지름신이 안 나타나는 일이 거의 없다.


다행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트리를 비롯해서 각종 장신구를 대할인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는 경쟁하듯 손에 잡히는 대로 크리스마스 소품을 쓸어 담았다.
고양이 녀석에게는 실내 보금자리 침대와 시원하게 몸을 긁어줄 빗도 바구니에 담았다.


사실 12월 초 10일 이상 집을 비우면서 냥이 걱정이 많았다.
굶어 죽진 않을지 추위에 얼어 죽진 않을지......

우리 냥이는 길냥이 출신이라 아직 마당에서 키우고 있다.
그래서 마당에 집을 두채(?)나 지어 주었는데 녀석은 우리와 가장 가까운 툇마루 옆 집을 선택했다.
우리가 떠나기 전 그 집안에 털이 부드럽고 푹신한 인형을 하나 넣어 주었다.
영하 10도 밑으로 기온이 급강한다는 예보가 있었기 때문.
아무래도 인형이 체온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또 먹거리가 걱정되었다.
여전히 야성을 가지고 있어 나무도 잘 타고 새도 사냥하지만 겨울 자연 속에 먹을 게 별로 없어 보였다.
집을 비우기 전 녀석의 집 근처에 10일치 이상의 사료를 여러 그릇에 나누어 담아주고 갔다.
한 5일이 지나 CCTV로 확인해 보니 사료로 수북했던 그릇들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아내는 급히 남동생에게 카톡으로 고양이 밥을 채워 달라고 SOS를 타전했다.
그리고 다시 이틀 후, 충분히 사료로 가득 채워준 그릇들은 또 다시 완전히 비어 있었다.
우리 하양이가 그렇게 많이 먹는단 말인가?

알고보니 주범은 둘 무리였다.
우선 동네 길냥이들이 우리집 마당에서 오랜만에 포식을 하고 갔다.


집주인이 없으니 정말 마음 편하게 먹고 갔다.
살찐이, 누렁이, 이름없는 거렁뱅이 고양이까지,,,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우리 하양이가 외롭진 않았을테니.

그런데 또 다른 식량 도둑 무리가 있었으니 그 놈들은 바로 물까치 녀석들이다.
녀석들 생김새를 토대로 구글에 집중검색해서 찾은 이름이다.
머리에 검은 두건을 두르고 깃털은 연한 푸른빛을 띄고 있다.


매우 영리한 녀석들이다.
관찰해 보니 일단 무리 중 한녀석이 먹이 가까이로 접근한다.
그리고 안전이 확보되면 소리로 나머지 녀석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 약 10여 마리의 물까치들이 집단으로 먹이를 공략한다.
이렇게 사료그릇은 순식간에 바닥을 드러낸다.
백번 양보해서 여기까지는 포식자 사피엔스가 타종에게 베푸는 배려라고 치자.
그런데 물까치 녀석들은 잘 먹고 그냥 물러가지 않았다.
툇마루와 담장 그리고 주변 사방에 똥은 뿌려 놓고 갔다.
나중에 돌아와서 꽁꽁 얼어붙은 마당수도를 녹여 녀석들의 똥에 물을 뿌렸다.
사실 이 모든 일이 하양이 사료에서 비롯된 일이다.
척박한 겨울에 정원 부페를 차려 두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암튼 걱정스런 마음을 안고 돌아와 보니 우리 냥이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굶어 죽었는지 얼어 죽었는지 아니면 떠나 버렸는지......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지하 주차장에 차를세우고 올라오는데 어디서 낯익은 소리가 들린다.
마당에 올라서자 하양이가 기다렸다는듯 슬라이딩을 하더니 몸을 뒤집는다.

이렇게 우리는 하양이와 재회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녀석이 생각보다 추위에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밤에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도 여전히 마당의 집에서 재운다.
낮에는 툇마루와 붙은 방으로 들여와서 먹을 것도 주고 낮잠도 재운다.
이번엔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녀석의 침대를 아래에 놓아 주었다.​


그랬더니 요가에 발차기까지......
​​


녀석 팔자가 제일 좋다.

전원주택에 살면서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는 계절의 멋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온몸이라고 표현한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어디에 살든지 우리는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하지만 우리가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그 정도는 크게 달라진다.


지금 사는 집은 산 비탈면에 지어졌다.
때문에 경사길을 따라 아랫집과 윗집에 인접해 있지만 적당한 폐쇄감과 개방감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이 점은 설계에 따라 상당 부분 더 조정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이런 경사면이 좋은 것은 나머지 두 면은 완전한 개방감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건축가는 이 지형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남향 면에는 3미터 높이의 큰 거실창을, 북향 면에도 상당히 큰 창을 놓았다.


이 개방된 두 방향으로 낮에는 많은 빛이 집안을 가득 채운다. 뿐만 아니라 나는 자연이 계절마다 그리는 다채로운 풍경화를 감상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이번 가을도 실망시키지 않는다. 나는 집안에서 가을이 여러 크기의 프레임에 그린 다채로운 풍경화를 날마다 간상한다. 그러다 거실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그 그림들은 마치 VR처럼 생생하게 내 온 감각을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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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반가운 손님이 왔다.
전에 형제들과 함께 우리집에서 포식을 한 후 까망이와 함께 마당 어딘가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간 하양이다.
그때 떠나기 직전 돌아보는 그 모습이 얼마나 이쉽고 섭섭하던지 한동안 마음이 허전했었다.

이번에는 어미인지는 모르겠으나 둘이서 뒷마당 음식 쓰레기를 뒤지고 있다.
그때 함께 있던 까망이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동네에 별로 먹을게 없나보다.
오랜만인데 별로 살아 붙은 거 같지는 않다.
지저분한 쓰레기를 뒤지는 모습이 안스럽다.

우리를 보자 냥이들은 이제 별로 두려움도 없이 가까이 으슬렁 거린다. 하양이는 우리 앞에 와서 몸을 뒤집으며 재롱을 떤다.
그러다가 꼬리를 빠짝 세우고 내 다리를 스치우며 지나간다.​


밥 달라는거다.
냥이도 배고프면 체면을 차리지 않는다.
인간과 다를 바 없다.

냥이 덕에 기분이 좋아진 아내는 식사를 급조하러 들어간다. 나도 감히 잘 얻어먹지 못하는 미트볼과 밥 그리고 멸치애 참기름까지......그럴싸한 냄새가 나는 요리가 급한대로 만들어졌다.

녀석들, 금새 우리는 무시하고 음식에 집중한다.


이날 이후로 이 두 녀석들이 저녁 때만 되면 등장한다.
어미는 항상 새끼를 앞에 내세운다.
새끼 냥이는 재롱을 얼마나 부리는지 냉장고 문을 안 열수가 없다.
정말 적극적인 구애를 하는 모습니다.


에쿠~~ 이제 줄만한 음식도 별로 없는데......
올때마다 아내는 비싼 우리의 식재료를 아낌없이 꺼낸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되지만 저녁만 되면 왠지 다실 창을 열어보게 된다.

고양이 가족이 우리집에서 연어 훈제로 포식을 하고 난 후 어미 고양이는 새끼 두 마리를 남겨두고 떠나 벼렸다.

우리는 남은 새끼 고양이 두 마리와 저녁 늦게까지 놀았다.

처음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녀석들.

우리 앞에서 온몸을 뒹구는가 하면 배를 드러내면서 장난을 치고 애교를 부린다.

머리를 쓰다듬어도 피하지 않고 귀엽게 받아 준다.

처음에는 담벼락 위에서 놀더니 나중에는 대범하게 뒷마루에 올라온다.

이제 마치 자기집인 양.

이제 녀석들은 우리의 식구가 된 것일까?

아내와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연에 어쩔 줄 몰랐다.



여전히 무더운 날씨가 지속되고 있었고 밤이 되면 습기 속에 모기떼들이 사냥감을 기다리며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당으로 나갔다.

그러면 새끼 고양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우리에게 다가온다.

아내는 하루 종일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멸치와 밥을 물에 말아주니 너무 잘 먹는다.

 


처음에는 말라보이던 새끼 냥이들이 어느새 살이 올라오는 모습이 느껴진다.

식성이 대단해서 주는 대로 다 먹는다.

아내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이마트에 냥이밥을 주문했다.

이날 우리는 까만 녀석은 까망이, 하얀 녀석에게는 하양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우리가 기억하기 좋도록 붙인 이름이지만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물론 녀석들은 불러도 못 알아듣는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눈이 뜨자마자 서로 기다렸다는 듯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 녀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내는 자기 새끼를 대하듯 바로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녀석들 기다렸다는 듯 금세 게 눈 감추듯 다 먹어치운다.

나는 집에 남은 합판 조각으로 녀석들 집을 지어줄 생각을 했다.

집 속에는 무엇을 넣어줄까, 겨울에는 춥진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내 머리속에서 점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녀석들의 밥그릇과 물그릇으로 쓸 만한 것들을 찾아 깨끗하게 씻었다.

 

그런데, 그런데, 바로 그때......

또 다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미 고양이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나머지 새끼 세 마리는 어디에 둔 것인지 이번엔 혼자다.

자기 새끼를 찾으러 온 것을 아내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어미가 하양이와 까망이에게 머라고 야옹거린다.

아내는 이 순간 어미 고양이를 내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행동에 옮기진 못했다.

새끼가 어미를 따르는 것을 그 누가 막을 수 있으랴,

 

결국 하양이와 까망이는 어미를 따라 집 밖으로 나선다.

수돗가에서 녀석의 밥그릇을 준비하던 나는 아내가 두 녀석에게 가지 말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급히 길가로 나갔다.

까망이는 이미 어미를 따라 저 앞으로 가고 있고 하양이는 이제 우리집을 나서서 망설이고 있다.

하지만 결국 어미를 따라 나선다.

 

마지막 순간은 아직도 내 기억을 떠나지 않는다.

어미를 따라가던 녀석들이 갑자기 뒤돌아서 잠시 우리를 쳐다본다.

어미도 함께 쳐다본다.

그 순간 우리는 새끼 고양이들이 우리의 마음을 안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영화 <눈물이 주룩주룩>에서 여동생이 오빠의 집을 나서는 장면이 떠올랐다.

떠나던 여동생은 갑자기 뒤돌아보면서 크게 허리를 숙이며 오빠에게 '고맙습니다'라고 외친다.

우리 냥이들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렇게 우리는 새끼 냥이들을 보내고 말았다. 

아내와 나는 그들이 떠난 도로위를 한참 멍하니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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